협상 튀니지 점령이 베니스 탈환 이후인 관계로 빨리 베니스를 점령해야만 튀니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베니스 점령을 위한 진격보다는 자국 안위에 우선하는 모습을 보여 이탈리아와 계속 좋은 관계를 가지기면 결국 손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오스트리아와 화합을 하고 함께 이탈리아 반도를 공략하자고 했다. 일단, 오스트리아는 승락을 했고, 프랑스는 튀니지,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프랑스가 나누는 조건으로 전략을 짰다.
대 독일에 대해서는 지난 봄 점령한 뭰헨 지역을 교두보로 이번 겨울에 독일의 힘을 완전히 빼놓기 위해 영국과 협력해서 퀼지역까지 진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이까지 생각지는 못했으나 영국에서 끝까지 밀어부치자고 먼저 제안을 했다. 별다른 손해가 없는지라 흔쾌히 승락을 했다. 한번 배신을 한 이상 독일을 지도상에서 조속히 없애는 것이 양국의 목표가 되었다. 이 때 영국은 러시아에 너무 깊이 들어가 다른 국가들로부터 견제를 받는 것을 우려해 일단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고 했다. 프랑스는 이 참에 러시아를 완전히 와해시키는게 낫지 않느냐고 했지만, 영국은 독일 공략과 러시아 공략이라는 양국을 상대해야하는 부담으로 일단 러시아 지역에서 발을 빼기로 결정한 듯 보였다.
진행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이탈리아 침략을 위해 전진한다. 오스트리아와 연합을 하게되어 자연스럽게 피드몬트로 진입하는 데에 부딪침 없이 성공한다. 그러나, 스페인 남해안에 정박중인 해군은 튀니지를 향해 서지중해 진출을 시도했으나 튀니지에 정박 중인 이탈리아 해군의 저항으로 진입에 실패하게된다. 뭰헨에 있던 육군은 영국과 퀼지역으로 공략했으나 러시아의 방해로 작전은 실패한다. 독일은 네덜란드마저 빼앗기며 국가의 최대 위기가 도래한다. 영국, 프랑스에 친히 황제의 사과문이 전달되었으나 양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강력하게 밀어부친다. 다행이 러시아와 독일의 동맹이 이루어져 퀼지역까지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다시 살아나기에는 쉽지 않은 모습이다.
터키는 역시 러시아 공략을 시작했다. 아르메니아에 있떤 터키 육군은 러시아 지역으로 침입해 들어갔고, 해군력은 루마니아를 침공했다.
감상 상대의 이동경로를 미연에 파악한 이탈리아의 행보는 눈여겨 볼만하다. 튀니지를 점령하지 못한 현재 가을 이동시 튀니지를 벗어나버리게되면 결국 튀니지 점령에 실패하게된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튀니지에서 서지중해로 이동명령을 내려 프랑스의 진출을 막고 튀니지도 점령하는 성과를 얻는다. 중대한 결단에 앞서 적국의 이동에 대해 심오한 전략이 빛을 발하는 모습니다. 비록 적국이나 역시 이탈리아 총리의 역량은 대단하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터키와 합세해 오스트리아를 하나하나 벗겨나가는 모습또한 눈여겨 볼만한 장면이다.
협상 이탈리아를 도와 오스트리아를 베니스에서 몰아내고, 대신 이탈리아로 부터 튀니지를 이양받기로 합의를 보았다. 오스트리아의 확장을 막고, 튀니지도 획득하는 일거양득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겨울에 생산한 육군을 피드몬트로 진격을 시키기로 결정하고, 포르투칼에 정박해 있는 해군은 지중해에 진입하기 위해 스페인 남부해안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이때만해도 그간 오스트리아와는 연락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정말, 치시려는 것은 아니시죠?"라는 질문에 "정말 칠건데요."라고 답해줬다. 이탈리아 지지성명서를 보고 연락을 취하셨을텐데 좀더 일찍, 자주, 쉽게 오스트리아와 연락이 되었다면 함께 이탈리아 공략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지만, 연락이 잘 되지 않은것도 오스트리아에 전쟁하게된 큰 원인 중으 한가지였다. 이탈리아로 육군 한부대만으로는 군사력이 남아돌았다. 어짜피 영국과 독일과는 동맹을 맺은 관계라 그 방향으로는 진격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고, 피드몬트에 한부대만으로는 부족해 보여 스위스 북단을 돌아 들어가기 위해 독일에게 양해를 구하고 뭰헨지역으로 진입하기로 약속을 했다. 봄에 뭰헨에 진입하고 가을에 오스트리아 북부 지역으로 진입하면 이탈리아를 방패로 삼아 강한 오스트리아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삼국 협상이 자주 네이트로 이루어졌기때문에 영국, 독일, 프랑스의 연대는 강했으며 서로의 약속을 굳게 믿는 상황이었다. 독일 서기님이 약간 주저하기는 했으나 프랑스와의 굳은 결의를 믿고 진입을 허락했다.
진행 프랑스 마르세유 육군은 이탈리아와 함께 본격적으로 베니스를 침공한 오스트리아를 물리치기 위해 피드몬트로 진군을 한다. 또한, 독일의 양해를 구해 보헤이안이나 티롤리아지역으로 진격하기 위해 뭰헨으로 진출한다. 이는 결국 중대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칼에 정박중인 해군은 지중해를 향해 기수를 돌렸고, 육군은 스페인을 뒤로하고 가스코뉴를 거쳐 지중해 지역으로 진격한다.
이탈리아는 튀니지를 점령하고 로마의 육군을 풀리아로 내려보낸다. 이탈리아의 이 행동을 프랑스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으며 봄이 지난 뒤 이에 강력하게 이탈리아에 항의를 한다. 이탈리아는 풀리아 지방으로 진입하게된 이유가 자국 보호를 위함이라고 했으나, 나폴리에 있던 오스트리아와 충돌한 프랑스로서는 무척 당황해한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이용을 당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으며, 이후 이탈리아는 뭰헨지역 진출을 강탈로 표현하며 강도높게 프랑스를 비난했다. 프랑스와 이탈라이아는 동맹국에서 적대국이 된다.
사전 협상이 있었던 관계로 뭰헨으로의 진입은 아무런 문제 없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프랑스로서는 대 이탈리아 성명서를 통해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성명을 발표한다. 피드몬트에서 오스트리아 군과 충돌을 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으나 조속한 베니스 탈환에 힘써야할 이탈리아는 폴리아 지역으로 자국 방어에 전념하므로 앞으로 프랑스의 피드몬트 진입을 도우려는 모습 등은 전혀 볼 수 가 없었다. 이로서 이탈리아와의 대립이 시작되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악연의 구렁으로 깊이 빠지게된다.
영국은 지난 해 독일의 실수로 확보하지 못한 덴마크를 접수하고 상트페테르부르그까지 진출해 러시아 심장부 바로 아래까지 진입을 하게된다. 가장 두드러진 성장을 보인 영국은 독일과의 덴마크, 벨기에 교환 약속을 깨고 다음 가을에 넘기겠다며 버틴다.
독일은 지난 해와 같이 러시아를 계속 압박해 간다. 바르샤바를 독일 수중에 넣고 동진을 계속하게된다. 이에 러시아는 별다른 소득없이 영국과 독일의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이번에도 터키에게 배신을 당하며 러시아 견제에 실패하게 된다. 터키는 오스트리아를 배신하고 이탈리아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의 세르바아를 점령하게된다. 두번이나 터키에게 배신당한 오스트리아는 터키에 선전포고를 한다.
영국의 벨기에 인양을 늦춘일이나, 프랑스의 뭰헨 통과에 대한 이탈리아의 비난으로 독일황제는 양국을 비난하게 된다. 독일은 이탈리아의 술책에 넘어가 버린다. 이에 프-영 양국은 독일의 이런 태도에 불만을 표하며 결국 영-프 양국은 독일을 공략하게 된다. 2년이 채 가기도 전에 3국동맹은 결렬되고 북해를 중심으로한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동맹관계 이탈리아 - 터키 이탈리아 - 프랑스 (이번 봄을 계기로 적대관계로 전환) 프랑스 - 영국 - 독일 (이번 봄을 개기로 독일과 양국은 등을 짐)
적대관계 프랑스 -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 터키 러시아 - 터키
동맹국이 없는 외로운 나라 오스트리아
감상 굳이 프랑스가 이탈리아에 목을 매면서 끌려다닌것이 프랑스의 가장 큰 실수였다. 디플로머시가 대의명분을 중요시하여, 대외 성명이나 국가간 전쟁, 침략에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영토를 침범한 오스트리아의 행태는 가장 잡기 쉬운 명분이었다. 이탈리아를 도우면서도 오스트리아의 확장도 막고, 튀니지도 얻고, 대의명분도 쌓는다는 전략이 섰던것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오스트리아와 협력해서 이탈리아를 공략하고 차후 터키, 러시아와의 교섭으로 오스트리아를 견제하는 전략을 세우는 방향으로 진행했어야했다. 오스트리아로서는 이탈리아 지역을 넘어서 프랑스까지 진입하기에는 러시아와 터키가 부담이 아닐 수 없지않은가?
영국은 러시아와의 약속을 깨고 침입을 한 것 같았다. 러시아는 무척 당황해했으며, 영국의 배신에 대해 격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협상 때 깊숙하게 러시아 본토로 침입하면 러시아를 크게 흔들어 놓을 수 잇을것이라고 조언을 했는데, 정말 깊이 들어갔다. 함께 독일을 공략하는 것이 목표로 보였으나 러시아는 영국에게 뒤통수를 쎄개 맞은 결과였다. 역시 봄 작전 결행시만해도 삼국동맹은 유효했고 튼튼했다.
협상 부대 창설에 중요한 요소가 공격 방향인데, 프랑스는 영국, 독일과의 단단한 동맹 관계를 믿고 북해를 뒤로하고 지중해로 향한다. 명분은 이탈리아를 침략한 오스트리아의 침략 야욕을 무너뜨리고, 이탈리아를 구하기 위하는 것이였는데 실상 튀니지를 이탈리아로부터 이양받기 위한 조건이었다. 이탈리아 또한 베네치아 탈환 후 튀니지 이양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프랑스는 이에 동의를 한다. (사실, 처음에 그냥 한번 도와 주면되는줄알았다.;;) 속내는 튀니지를 인양받으려는것이었는데, 이 작전으로 결국 이탈리아와의 관계는 소원해진다. 마르세유에 군함을 생산해 이탈리아를 압박하지 않고 육군 생산을 통해 오스트리아를 무찌르기 위해 진격 준비를 한다.
진행 이탈리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는 부대를 창설한다. 프랑스는 오스트리아 견제를 위해 마르세유에 육군을 생산을 한다.
영국은 육군과 해군을 같이 늘려갔고, 독일은 역시 육군을 생산해 러시아 진격 준비를 한다. 발칸반도는 여전히 안개속에 남아있으나 역시 이탈리아의 그리스는 위태위태한 모습이다. 가장 큰 부대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는 그 지역이 광범위한 만큼 부대가 여러 곳에 늘려있으나 북방보다도 남방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인다.
감상 당시, 명분을 중요시한 프랑스의 정책으로 튀니지로 바로 진격하지 않고 오스트리아로 향한다며, 이탈리아를 도와주는 모양새를 꾸렸던 것이 프랑스로서의 실수였다. 만약 오스트리아와 연락을 취하고 연합하여 프랑스가 마르세유에서 해군을 생산하고 포르투칼의 해군과 합세해 튀니지를 향했다면 이탈리아는 쉽게 잡을 수 있었을 것인데, 초반 점령을 하지 못한 것이 큰 실수였다. 대의명분은 이 게임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확실한 실리를 챙겨나가는 것이 승리의 길이다. 실제 현실과는 달리 한나라가 18보급지를 확보해야만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결국, 다른 나라에 배반을 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몸이 약하고 힘들면 병이 더 빨리 달려들고, 제대로 먹지못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약한 나무에 해충이 달라들듯 현실 또한 약한 나라가 대상이 되어 먹히는 것이다.
협상 가을 작전을 수행하기 전 영국에게 벨기에를 내어주느냐 마느냐라는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특히, 영국이 벨기에를 취하게되면 앞으로 영국의 확장 정책을 쉽게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독일과 연합해 영국을 견제하려고 생각을 해 보았으나, 결국 초반 분쟁을 피하기 위해 일단, 피카르디에 있는 육군을 버건디로 이동을 시켰다. 3국은 별다른 마찰없이 동맹을 확인하고 협상을 마쳤다. 독일은 러시아를 치기위해 동진을 하겠다고 했고, 영국도 러시아로 간다고 했고, 프랑스는 지중해로 간다고 했다. 이탈리아냐? 오스트리아냐? 아직 결정은 하지 않았다.
진행 대부분의 나라는 예정되었던 수순대로 보급지를 하나에서 두개까지 획득해나갔다. 프랑스는 순조롭게 이베리아 반도의 두 나라를 획득했고, 동맹국인 영국 또한 순조롭게 벨기에, 노르웨이로 진출을 했다.
독일은 1901년 봄에 일어난 러시아와의 충돌로 잔득 분기되어있으며, 가을에도 역시 러시아를 향해 진군했다. 다음 봄에 바르샤바를 취할 수 있도록 베를린에 주둔중인 육군은 프러시아로 진격했다. 아쉬운 점은 서기님이 규칙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 보급지를 네덜란드 하나 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덴마크를 그대로 방치해 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1901년 겨울 생산은 한 부대만 생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되고,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배신으로 더욱 곤란한 상황으로 몰리게된다. 이동을 마친 뒤 러시아는 독일에게 뒤를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후방을 침탈당하게 되지만 당시 프랑스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다음 봄에 러시아로부터 독일의 후방을 치고 들어와달라는 서신이 왔으나 정중하게 거절했을 정도로 프랑스는 독일 영토에 욕심이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해 가을 뭰헨을 점령하게 된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프랑스는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진격해 들어가면서, 동시에 터키가 그리스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한다. 그러나 터키는 오스트리아와의 약속을 깨고 함대를 에게해로 진출 시키므로 그리스를 이탈리아에게 넘겨주게된다. 결국 이탈리아는 베네치아를 빼앗기고 유일하게 부대 생산을 하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오스트리아에 막혀 몇 년간 계속 고전하게 된다.
터키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앙카라에서 아르메니아로 이동을 한다. 오스트리아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군함을 에게해로 진출시킨다. 여기서 이탈리아와 터키의 유대관계가 초반에 견고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후 오스트리아는 양국에게 견제를 받으며 압박당한다.
동맹관계 프랑스 - 독일 - 영국 이탈리아 - 터키 (그리스 안착 : 터키의 오스트리아 배신)
긴장관계 오스트리아 - 터키 (그리스 지원 배신) 터키 - 러시아 (터키 아르메니아 접근)
적대관계 오스트리아 - 이탈리아 (베니스 침공) 독일 - 러시아 (바르샤바 충돌)
감상 프랑스의 해군을 포르투칼까지 이동시키며 이베라아 반도를 점령하는 것은 상당히 소모적인 행동이다. 이미 다음 해 지중해로 방향이 결정된 상황이라면 프랑스 함대는 스페인 남부 해안에 정박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정이었다. 포르투칼에서 다시 중대서양으로 나와서 서지중해로 진입을 하면 한해가 지나가 버린다. 따라서 지중해로 방향으로 결정이 1901년 봄에 마르세유 육군은 스페인으로 진격을 함으로 함대의 이동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한다. 대신, 파리 육군은 피카르디로 이동해 영국의 행동에 예의 주시해야한다.
1901년 한해에 이동을 어떻게 하느냐가 다음 진행에 매우 중요한 사항이된다. 결국 첫해 많은 나라들과 협상을 하고 어느 나라가 진정한 아군인지를 빨리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봄 이동단계 때부터 1902년 봄 이동 때 어디로 향해야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의 첫해에 실패한 것은 오스트리아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 하지 못한 것이다. 이탈리아를 공해 압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이루어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물론, 오스트리아 장관님이나 차관님과 연락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큰 원인이 되긴한다.
타국의 행보에 한가지 반면교사로 삼을 것이 하나 있다. 오스트리아와 터키의 합작품인 이탈리아의 그리스 진입 방해 공작이 실패이다. 굳이 오스트리아는 그리스의 힘이 없이도 자국의 힘만으로 이탈리아의 그리스 점령을 막을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육군이 불가리아에서 그리스로 이동시키면 양국이 교착상태로 진행에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다만, 이탈리아와 터키의 유대관계를 사전에 깨기위한 포석으로 보이는데 결국 오스트리아의 실패로 결정나고 말았다. 즉, 터키가 이탈리아 군을 지원해 그리스 진입을 도와준다면 결국 이탈리아, 터키이 협공에 세력이 위축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많은 수을 고려하고도 터키를 끌어들이려했으나 실패함으로 베네치아에서 이탈리아와의 교착상태는 상당기간 지속된다.
어느 나라와 동맹 관계를 맺을 것인가? 정답이 있다. 1. 주변 국가 건너편에 있는 나라. 2. 가까이 있는 두나라 중 한나라. 3. 연락이 잘되는 나라.
결과적으로 프랑스가 손을 잡아야하는 나라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중 한나라 였으나 초반 러시아, 오스트리아와는 연락이 잘 안되었으며, 영국과 독일 양국과 손을 잡게되는 꼴이 되어 적절하게 밖으로 뻗어 나갈 기회를 보지 못하고 말았다.
더욱이, 다음해 이탈리아와 손을 잡고 오스트리아를 치겠다고 나선것은 실책 중에서도 실책이었다. 그 결과는 몇년 뒤에 드러난다.
협상 드디어 첫해가 시작되었다. 주변국들은 너나 할 것없이 각국에 연락을 취했다. 프랑스는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터키에까지 서신을 보냈고,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는 답신을 보내왔다.
첫해가 시작되기 전부터 독일과는 긴밀하게 협상이 이루어졌으며, 굳게 동맹을 맺기로 결정했다. 그러던 중 영국에서 3국동맹을 제의했고, 그 이후로 네이트 메신저를 통해 3국 협상의 자주 이루어졌다.
이탈리아는 피드몬트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연락과 함께 양국의 평화를 기원했다. 프랑스로서도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이 급선무였으므로 이탈리아 반도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었다. 물론, 프랑스도 양국 평화를 기원했다.
진행 프랑스는 이베리아 반도로, 독일은 네덜란드, 영국은 노르웨이와 벨기에로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일찌감치 독일로서는 달리 방향을 정할 것없이 러시아로 진격을 했다. 오스트리아와 불가침 협정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뜻하지 않게 독일은 러시아와 충돌을 일으켰는데, 이는 밝힐 수 없는 감정적 문제가 겹쳐있는 것 같기도했다. 러시아로서는 독일의 진격을 막을 수 있어 다행스러운 행보였지만, 바르샤바에서 슐레지엔(실레지아)으로 진격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종의 항의성 퍼포먼스로 여겨진다.
독일,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는 충돌없이 보급지를 향해 차근차근 진출해 나갔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육군은 비엔나에서 티롤리아로 이동하며 이탈리아와의 긴장감을 높였다. 이에 이탈리아에서는 긴급하게 유럽 형제들에게 오스트리아의 행동을 규탄했고 오스트리아에 경고했다. 올 가을 베네치아는 누구의 수중에 남아있을까?
동맹관계 프랑스 - 독일 - 영국
긴장관계 오스트리아 - 이탈리아 (티롤리아 접근) 오스트리아 - 독일 (티롤리아 접근)
적대관계 독일 - 러시아 (퍼러시아 충돌)
감상 3국 협상이 이루어져 북해 일대의 3국은 충돌없이 부대 이동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동에 신중을 기했다. 초반 독일과 몇년뒤 영국을 함께 치자는 약속을 했던터라 더욱 영국을 경계했다. 육군은 이베리아 반도로 바로 진격하면 되지만, 프랑스 영내를 빙글빙글 돌듯 이동을 했던 것도 결국 어느 나라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3국 협상이 이루어졌으나, 일단 게임의 특성을 고려하여 최대한 안전하게 이동을 했다. 그러나 이런 신중함 때문에 해군은 포르투칼로 갈 수밖에 없었고 다음 해 이동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손실을 입게 되었다.
1901년 프랑스 해군은 가급적 프랑스 근해인 영국해협이나 벨기에, 또는 이탈리아 진출을 위해 스페인 남쪽 해안에 정박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이동이라 생각한다.